중국 백두산(장백산) 여행
기간:1999.7.22(목) ~ 7.29(목)
일정:7/22--장춘 도착 및 길림으로 이동
7/23--길림시내관광(송화강변 새벽시장, 동. 식물원)
<생활 일반>에 대하여
야간열차로 연길로 이동
7/24--백두산(장백산) 여행
7/25--길림으로 이동
7/26--길림시내관광(용담산,북산,시내야경)
7/27--사평(백천)으로 이동
7/28--백천 주위 농촌 구경
7/29--백천,료원,장춘공항 출발
백두산의 비경:1, 2, 3, 4, 5, 6, 7, 8, 9
서론:
정말 오랫동안 가고 싶었던 백두산 여행을 하게 되어 여간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96년도에 비자까지 받아 놓고 여의치 않아
실행치 못했음은 현실을 살아가는 생활인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암초임을 많은 사람들은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7박8일 동안 길림성만을 다녔으며 특히 백두산 여행에 중심을 두고 주위의 우리동포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을 내 눈에 비친
대로 피력코자한다.
나는 중국에 대한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경험도 없는 터라 여기에 적은 글은 내가 여행을 하면서 보고 느낀
것을 적은 것이므로 미숙하거나 때로는 이치와는 거리가 있는 내용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미리 밝혀 두고자하며 다만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7/22
06:30 집에서 출발, 아시아나 08:10 김해공항 발.
11:10 김포공항 출발, 12:10(현지 시간, 한국시간은 13:10, 1시간 역시차 발생. 이후 중국에서의 시간은 현지 시간으로 표기함)
장춘공항 도착.
---상공에서 내려다 본 장춘의 주위는 광량함과 푸르름의 두 가지로 대변할 수 있었지만 비행기가 땅에 다다르자 느낌은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중국에서 손꼽히는 대도시의 국제공항의 규모가 생각과는 크게 달랐다.
입국 절차를 기다리는 동안 통관대는 몇 대의 선풍기로 후덥지근함을 식히고 있었고 화장실도 우리 나라의 7~80년대의 철도역을
연상케 하는 정도였다.
공항에서 마중 나온 사람의 안내를 받으며 공항 청사를 나서자 주차장에서 많이 눈에 익은 자동차에 오르게 되었는데 다름 아닌
우리 경승용차의 시조인 티코!
이는 우리 나라에서도 일본 스즈키 사의 힘을 빌어 대우에서 생산했는데 이 차량 역시 중국에서 SUZUKI의 로고를 그대로 단80년
대말 일본에서 생산됐던 WE'VE모델(티코는 뒷트렁크의 햇치형상이 직선인데 비해 이는 약간 둥근 형상임) 그대로였다. 또한
특이한 점은 앞뒷좌석 사이를 쇠창살로 온통 막아 놓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 역시 급변하는 현실의 어두운 면인 강도로부터
현금을 소지한 운전사를 보호하기 위해 강제규정으로 설치케 한 것이라고 한다.
장춘을 빠져 나와 길림으로 가는 도로는 국도 같았는데 그야말로 온갖 자동차, 소달구지, 사람들이 서로들 아무런 거리낌없이
뒤엉켜 지나다녔다.
장춘에서 길림까지는 자동차로 2시간 정도를 달려가는데 길림에 거의 도착할 때까지는 산을 볼 수가 없을 정도로 더 넓은 벌판과
옥수수 밭의 반복이었다.
곳곳의 도로변에서는 참외와 수박 등의 과일을 내다 놓고 파는 농부들을 볼 수 있었고, 사치스런 우리의 주유소와는 많은 차이가
나는 '加油所'라고 적힌 볼품없는 건물에서는 플라스틱통에 기름을 넣어서 팔고 있었다.
국도가 끝이 나고 길림 입구에 들어서자 넓은 시내도로변으로 늘어선 아파트는 과연 저 안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황폐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도로에서는 역시 사람이 최우선이었다. 아무 곳에서나 적당히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고 아예 횡단보도 같은 것은 내가
중국에 머무는 동안 본 것이 손곱을 정도였다. 차가 사람을 피하고 자전거를 피해 다녔다. 그리고 중국 사람들을 '만만디'라고들
하는데 길거리에서의 운전대를 잡은 사람들에게서는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앞차에 바짝 붙이고 끼여들고 급브레이크 등은 운전
경력 10년이 넘은 나로서도 감탄(?)이 나올 지경들이었다.
길림시내 북단을 거쳐 동쪽 편으로 송화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송화강 북단은 공단지역이었다. 회색빛 건물위로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아파트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의 인도자의 아파트에 도달했다. 주변에는 도로공사 아파트 건축공사등을 하고 있는 곳이 많았다.
새로 짖고 있는 아파트는 대개가 적벽돌로 짖는 것이 많았지만 기존의 아파트는 대부분이 블록과 시멘트 겉칠로 마감한 것이었다.
도시미관을 배려한 흔적 같은 것은 아직은 거리가 멀었다. 도로 등의 정비는 계획경제의 우수성을 잘 엿볼 수 있지만 아파트 외벽
칠을 한곳은 찾아 볼 수 없고 건물사이의 공간은 아무런 정리가 되지 않은 채 맨땅 그대로가 대부분이었다. 아파트는 어디를 가던
6층 정도가 대부분이며 개인이 사서 소유할 수도 있지만 맡은 직분(조선족의 표현은 '공작')을 다한 사람들에게는 영구임대를
하고 있었다.
아파트의 내부 구조는 17평 내외 정도이고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는 방은 2개라고 한다. 산아 제한으로 원칙적으로 자녀는 1명밖에
낳을 수 없으니 더 이상은 필요가 없다는 계산이다. 크기나 구조는 거의 획일적이고 공용의 시설은 전무하다. 계단이나
건물외부에는 밤이 되어도 불빛 하나 찾아 볼 수 없다. 밤에 계단을 오르내리는데 큰 불편이었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밤에 외출할
때는 손전등부터 챙겨야했다.
이런 실정이니 생활비는 많이 들게 없는 모양이다. 보통의 경우 아파트 임대료와 식료품 등의 필수 생활비는 한 달에
200위엔(당시 1위엔=140원) 정도면 된다고 한다.
내가 머물렀던 길림의 아파트(길림에서의 안내를 받음)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조금 있는 우리 조선족 2,3세의 집으로 부모님들은
60대로 우리말을 잘 하였지만 그들의 자식들은 30대 인데 우리말이 아주 서툴고 의사소통에 다소 문제가 있었지만 내가 중국말을
전혀 못하는 데 비해서는 다행이었다.
7/23
중국에서의 첫날을 보내고 이틀째 아침 일찍 잠에서 깨었으나 다른 사람들의 인기척이 없어 잠자리에서 뒤척이다 누워서 중국을
보러 온 것은 아니다 싶은 마음에 켐코더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한여름의 공기는 무척이나 상쾌하고 시원했다. 공사중인
도로에는 간간이 노인네들이 모여 체조도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있었다.
다소 시간이 흐른 7시경 그 집의 아버님이 시장엘 가신다길레 따라 나섰다. 10여분을 걸어서 송화강으로 가는 대로 양변으로
새벽시장이 들어서는 것이었다. 시장의 풍경은 우리의 재래시장과 별차이 없이 주변의 농촌에서 경작한 각종 채소류, 민물고기,
우리에게서는 생소한 몇몇의 물품도 있고 잎담배도 팔고 도로의 한 차선을 가득 메우고 사람들이 몰려 있어 다가가 보았더니 한
젊은 여자가 롱 모피코트를 걸치고 옆에서는 몇 점을 들고 호객 행위를 하고 있는가 싶더니 갑자기 사람들이 흩어졌다. 공안들의
단속이라는 것이다. 가짜여서 그런지 진짜인데 동물 보호 차원에서 그런지는 모를 일이었다.
특이한 점은 중국의 남녀평등은 우리보다는 한 수 위여서 그런지 시장을 보러 오는 사람은 남자가 훨씬 많아 보이고 가격은
대부분이 '근'단위로 책정이 되고 이를 손 천칭 저울로 달아 그 무게대로 대금을 지불하고 있었다. 내가 다른 책자를 보니 이런
판매 방식이 전근대적이고 눈속임 등의 부패가 심하여 정부에서 강력히 제재를 한다고 보았지만 현실은 정부의 의지와 아직은
거리가 있어 보였다. 대로의 양변으로 인도가 있고 그 인도를 따라 약1Km이상을 빼곡이 메운 인파는 과히 인산인해 그 자체였는데
길림에만 해도 이러한 규모의 시장이 여러 군데라고 하니 과연 대단한 인적 자원이었고 한편으로는 놀라왔다.
아침 식사 후에는 길림의 남쪽 편에 위치한 동. 식물원으로 구경을 갔다. 규모는 꽤 큰 편이며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서 식물원은
따로 요금을 지불해야 했다. 동물원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있었고 몇 가지의 놀이시설과 서커스를 관람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길림역 광장에서 몇 개의 우리말 간판중 한 개를 골라 들어가서는 냉면을 시켰다. 고운 한복으로 차려 입은 꼬마
아가씨가 주문을 받으러 왔길래 반가운 마음으로 말을 걸어 보았으나 눈만 멀뚱해하며 우리말은 전혀 못하는 눈치였다. 조금 뒤
나온 냉면은 면발은 라면 정도의 굵기로 매우 졸깃하고 길이는 10여Cm정도로 짧고 맛도 조금은 특이했다.
중국 여행동안 줄곧 느낀 점이지만 중국에서는 워낙 요리문화가 발달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같은 이름을 가진 음식을 주문하였다
하여 같은 음식이 나오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음식점마다 맛이 다 다르고 조리법도 달라 보였다. 그리고 음식을 먹고 물을
시켰더니 또 멀뚱해 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중국에서는 우리처럼 식수를 제공하지는 않고 필요하면 0.5ℓ짜리 생수를 싸서
마셔야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음식점에서는 차를 끓여서 내놓는 곳이 대부분이다. 나의 상식을 완전히 빗나간 것 중의 하나가
물에 대한 것이었는데 중국은 특히 내가 간 동북지역은 오염이나 문화적 수준으로 봐서 물을 싸서 먹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었는데 시내의 아파트에서도 생수를 배달시켜 먹는 집도 많다고 하고 여름의 따가운 날씨 때문인지는 몰라도 0.5ℓ생수 병을
들고 다니는 것은 너무나 일상화가 되어 있었다. 시내의 버스외곽 광고판에도 생수 광고가 많이 눈에 띄었다. 0.5ℓ생수 한 병의
가격은 일반 상점에서는 1위엔, 관광지 등에서는 2위엔을 받았다. 도시의 일반 근로자들의 월급이 300~500위엔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결코 싼 것은 아닌 것 같다.
<생활 일반>
1.아파트의 구조 : 방2, 거실, 화장실 --- 우리의 17평 정도의 국민주택과 유사함.
2.전기 : 220V
3.식수 : 상수도, 다소의 제한급수는 되나 수질은 좋은 듯 --- 수돗물을 그냥 마셔도 냄새도 없고 전혀 이상이 없었음.
4.난방 : 개인난방은(농촌에서는 개인 난방) 없고 길림의 북단 공단에서 공급되는 대형 스팀 관로가 시내 곳곳을 드러내 놓고
관통하여 약간은 흉물스러워 보임.
5.전화 : 4~5년 전 만해도 농촌의경우 동네에 한 대 정도의 전화만 있어 전화를 걸면 통화자를 데리러 가고 했었는데 지금은
상당히 호전되어 많이 보급됨.
6.이동 통신 : 삐삐는 많이 보급된 것 같고 휴대폰은 이용료가 상대적으로 비싸 아직은 많이 사용하지는 못함. 사용료가
월2~300위엔 정도. 그러나 통화 품질은 우리보다 우수한 것으로 사료. 백두산 자락 일부를 제외하고는 비통화지역이 없었으며
더욱이 놀랄 것은 내가 일반전화로 휴대폰에 전화를 걸고 나의 전화번호를 알려 주지 않았는데도 그 전화로 다시 걸려왔다.
휴대폰에 내가 전화를 건 전화번호가 찍혔던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서비스가 있다면 장난이나 협박전화로 고생하는 사람은
없을 것.
7.텔레비전 : 수상기는 대부분 중국의 회사에서 제조된 것이고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알겠지만 집집마다 서글프기 조차한
TV안테나를 볼 수 있는데 아무렇게나 생긴 대나무나 나무막대기를 지붕 높이만큼 세워 올리고 그 꼭대기에 둥그스럼 아니면
우리의 옛날 안테나 비슷하게 만들어서 올려놓았다. 그러고서 시청을 하는데도 잘 볼 수 있는 것은 휴대폰 수신 감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마 빵빵한 위성을 가졌기 때문이리라. 우리 애들은 잔뜩 거둬만 가서 어따가 다 쓰는지?
8.기타 가전제품 : 아직은 특별히 보편화 된 것은 눈에 띄지 않고 별로 갖추어져 있지도 않다. 그러나 생활수준에 따라 다르지만
없는 것도 없이 다 생산되며 그야말로 경제력의 발전 속도에 따라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진 것만은 분명함.
9.일반주택 : 내가 시내의 주택에는 방문 기회가 없어 내부는 잘 모르겠으나 또 하나의 상식을 초월하는 것은 그 넓은 땅 위에
집들은 왜 그렇게 작게들 지었는지 모를 일이다. 농촌의 집들은 그래도 큰 편에 속한다. 도시의 일반주택은 아주 조그맣게
맞붙여서 지었는데 대문(아예 통로라고 불러야)은 사람하나 숙이고 겨우 들어갈 정도이고 온갖 잡동사니로 뒤범벅들이었다.
그리고 화장실은 수 십여 가구마다 하나씩 공동화장실이 따로 있다. 이러한 것 또한 문화적 관념 차이도 많을 것이리라.
낮에 시내관광을 하고 야간열차로 백두산 행을 위해 연길로 떠나기로 했다. 열차는 심양에서 출발하여 도문까지 장거리를
운행하는 기차였다. 길림에서는 자정에 출발(길림⇒연길:36위엔)하는 기차였는데 대합실 입구에서 검표를 하여 차표 소지자만을
대합실로 들여보냈다. 특이하게 길림 역에서는 공항에서나 하는 X-RAY검사대에 소지품을 통과시켜야만 했는데 거기서 나의 배낭에
문제가 있다고 제재를 했다. 출국시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조금은 당황스러워 옆에 있는 사람께 무슨 문제이냐고 물어보니
내 배낭 속에 칼이 있다는 것이다. 그야 당연히 있지. 배낭여행자가 과도 하나조차 없을 리 있으랴. 과도를 꺼내서 보여주고서야
그 자리를 통과할 수 있었다. 그래서 혼자서 그것도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의 여행이란 것이 고달픈 것이리라. 한참을 기다려
기차가 출발할 시간이 임박해서 나에게는 생각지도 않던 크다란 시련이 닥쳤다. 나와 동행하기로 했던 사람이 같이 갈 수
없는 사정이 생겨 진퇴양난에 빠졌다. 미리 혼자서 여행을 해야할 것 같았으면 여행에 필요한 사항들을 챙겨도 보고했을 텐데
기어코 동행 하겠다기에 나는 믿고 너무 방심을 한 느낌이었다. 어차피 집을 나설 때는 혼자 모든 걸 내 스스로 하겠다는
각오로 여행사의 행렬에도 끼지 않고 독자 노선을 선택했으니 만큼 부딪혀야 할 것에 부딪친 것이다. 개찰을 하고 출구를 나설
때부터 문제였다. 분명히 나의 표에는 좌석표시가 되어 있는데 찾아갈 방법이 없었다. 차안은 거의 콩나물 시루였다. 말은
한마디도 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여행자 회화책에 있는 표현들을 찾아 역무원처럼 생긴 사람에게 내 표와
함께 내미는 것 이었다. '나는 중국말을 못한다. 나의 좌석을 안내해 주시겠읍니까?' 정도의 표현이다. 그러나 반응은 냉담했다.
그러기를 몇 번, 기차 안은 복잡하고 무거운 배낭과 함께 한여름의 더위도 만만찮았다. 더 이상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궁지로 몰린 쥐였다. 객차와 객차 사이는 그나마 조금 형편이 나았다. 그 원리는 나도 잘 아는 바이다. 나도 대학에
다닐 때 한 시간 여를 달리는 기차를 타고 통학을 하였던 바 그런 생리는 상통했던 것이다. 정차 시에 오르내리는 계단을 막아
내리고 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들의 빈틈을 비집고 나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섰다. 곧바로 주저앉지는 못했다. 아직은 다리도 괜찮고
조금은 체면이라는 것도 있고 해서. 그러나 그것은 정말 허세였다. 이내들은 알고 있었다. 기차를 타고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몇
일을 여행하는 게 보통인데 남을 의식해 귀중한 체력을 한 푼 어치도 낭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갔다. 사람들이
왔다 갔다, 담배 피우러, 차내에서 장사하는 사람, 정말 유쾌한 여행은 아니었다. 이런걸 '싸서 고생'이라고들 그러지. 그러던 중에 조금 앳되고
걸친 옷에는 영어문구가 가득한 친구를 찍었다. 저렇게 영어를 많이 둘렀으니 영어는 몇 마디쯤 하겠지 해서였다. 'Can you speak
English?' '...' 그 다음은 당연히 회화책을 내밀었다. 그 친구는 책을 빤히 들여다보더니 이상한 소리를 했다. 중국어 옆에 있는
내가 봐야할 한글부분을 보고 한 것이었다. "심봤다!" 그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조선족 3세로 우리말은 그렇게 잘하지는 못하여도 손발을 동원할 필요는 없었다. 글자는 거의 모른다고 했다. 그는 흑룡강성
목단강 근처의 조선족 마을에서 농사를 짖는 부모님을 두고 지금은 장춘에서 중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며 방학이 되어 집으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왜 한국말 공부는 않느냐고 물으니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비슷한말을 들어 섭섭한 마음이었지만 그들의 말은
지금에 와서는 대부분이 한족에 동화되어 이름 석자 물려받은 그 이상의 별다른 느낌이 없단다. 서로가 많은 생각을 해봐야할
문제라고 생각된다.
몇 시간을 쭈그리고 있었던 바 자리 생각이 나서 내 표를 내밀며 자리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그 친구 왈 그 자리표는 표에
적힌 좌석일 뿐 아무나 먼저 앉으면 주인이라고 했다. 자기도 그런 표를 가지고 장춘에서부터 서서 오고 있단다. 더 이상 자리에
대한 미련은 접기로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그러다 보니 꼬박 밤을 새우고 있었다. 날이 밝으면 백두산 등정에 힘을 쏟아야 하는데 눈 한번 붙이지
못하다니.
어느듯 차창 밖은 희슴프레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고 객차 안도 어느 정도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여태까지는 정차하는 역도 별로
없었는데 정차회수도 잦아지고 안내방송에서는 우리말도 썩여 나왔다. 연변조선족자치구역에 들어선 것이다. 역사의 이정표에는
지역명이 우리말로 씌어 있고 그 밑에 중국어로 조그맣게 적혀 있었다. 그렇게 몇 개 역을 지나고 완전히 날이 밝은 후에야
우리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차창 밖의 풍경은 장춘이나 길림에서의 광활함은 없고 우리의 시골과 같이 나지막한 야산들로
쌓여 먼 곳은 잘 볼 수 없었다. 6~7시 가량이 되자 내리는 사람도 많았지만 올라타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창밖의 모습도 더욱
친근감이 더해지고 있었다. 동네의 담벼락에는 우리말로 씌어진 가게 이름, 사회주의의 생산증대를 독촉하는 듯 한 각종 구호들,
옹기종기 어깨를 맞댄 초가지붕, 내가 어렸을 적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런 낯익은 풍경들의 연속이었다. 차안의
안내방송도 더욱 숨가파지고 우측으로 연길 공항을 지나치자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짐들을 챙기기 시작하고 하차 준비에
부산을 떨고들 있었다. 이제서야 좀 분위기 파악이 되고 있었다. 밤새 이 차안을 채우고 달려 온 사람들의 상당수가 아주 먼 곳,
우리 조선족 동포들이 많이 모여 사는 심양이나 장춘에서부터 함께 왔던 것이다. 외양만 봐서는 한족인지 우리 동포인지는 도저히
분간이 가질 않고 그곳에서의 동포들끼리도 알지 못해서 처음에는 중국말로 말을 걸어서 몇 마디 나누면서 동포인지를 확인한다고
하니 내가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이 열차가 심양, 장춘을 거쳐 우리 동포를 이렇게 많이 태우고
오는 열차라는 사실을 일찍만 알았던들 아무에게나 말을 걸어볼 걸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도 내릴 채비를 하였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곳 연길에서 내리고 나머지 일부의 사람들만이 북한 땅이 바로 맞다은 도문으로 계속 갔다.
7/24
연길역에 도착한 시간은 7시 20분. 목단강의 그 친구도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연길에서 내렸다. 오후 늦은 시간에야 집에 도착할
것이라고 하니 쉽지 않은 여행 같아 보였다. 아쉬운 작별을 하고 연길역 앞에서 잠깐을 망설였다. 혹시 백두산행을 같이할만한
일행이 있으려나 해서였다. 머뭇거리고 있는데 왠 사람이 와서 먼저 말을 걸어 왔다. 그 사람의 눈에 내가 찍힌 것이었다. 말은
거의 표준말에 가까울 정도이고 약30세 정도의 나이에 인상도 좋아 보여 일행을 모을 수 있으면 타고 가겠노라고 반승낙을
하였다. 그는 나를 태우고 연길역 맞은편의 연길중심버스역(동북아호텔 옆)으로 먼저 갔다. 이 곳은 나로서도 사전 관련
여행책자를 통해 알고 있던 것으로 여기서 이른 시간에 백두산행 버스가 출발하니 혹시 나처럼 패잔병이 있나 가보자는
것이다. 한참을 기다리고 여기저기 물어도 보고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나의 결정을 기다렸다. 나로서도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려야했다. 싼 버스를 타기 위해 하루를 연길에서 소요하느냐 아니면 무리를 해서라도 혼자 전세로 다녀오느냐다. 일장일단이
상존했다. 연길에서 하루를 머문다면 그 옛날 만주 벌판에서의 우리 민족의 숨결을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을테고 그렇지만
나에게는 집을 나설 때부터 최소한의 일정으로 나섰던 터라 일정을 변경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먼저 가격부터 흥정을 했다.
500위엔을 달라고 했다. 나는 두말도 않고 응락을 했다. 예상 한 것보다는 높은 가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괜히 얼마를 덜
주려고 하다간 더 비싼 결과를 낳게도 되는 법이다. 연길시내를 한바퀴 돌았다. 시내는 장춘이나 길림과는 달리 깨끗하고
조용하고 잘 정리되어 기분이 좋았다.
<전산발매되고 있는 중국의 열차표>
<나를 백두산으로 안내해준 운전사의 명함>
8시 10분에 출발했다. 연길을 벗어나자 농촌의 풍경이 펼쳐졌다. 산 중턱에까지 밭을 일구어 과일을 심고 잘 정리된 논에는 벼를
심어 놓았다. 공사가 진행중인 고속도로를 따라 30여분을 달려가니 저 멀리 용정시내가 눈 밑에 펼쳐졌다. 빠듯한 일정으로
용정을 들르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차는 계속 달렸다. 내가 타고 간 이 차도 앞에서 언급한 우리의 티코 그 차였는데 이 사람은
우리의 개인 택시처럼 자기가 차주였다. 차 가격은 성능 면은 모르겠으나 편의시설은 다소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에서 판매되는
가격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들의 경제적 여건으로 본다면 상당히 높은 편. 중국에서는 영업용 택시의 경우 거의 90%는 이 차라고
보면 된다. 일반 승용차의 경우 폭스바겐 로고를 단 국내 생산 차량이 가장 많고 외제 차량으로는 도요다가 으뜸이었다. 그리고
소수로는 없는 차량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차종이 시내를 달리고 있으며 우리의 한국산도 많지는 않지만 웬만한 차종(대부분
1500~2000cc급)은 다 볼 수 있었다. 연길에서 백두산까지도 만만찮은 거리다. 편도 270Km. 그 거리의 반 이상은 비포장도로를
달려야한다. 말이 비포장도로이지 겁먹을 것은 없다. 단지 먼지가 문제다. 여름에 에어컨이 없는 차가 창문을 내려놓고 달리다
맞은 편에서 차가 오면 핸들을 돌려 유리창을 올려 닫고 해야 하지만 곳곳에 사람들이 삽을 들고 서서 도로 정비를 하고 페인
곳을 흙으로 메우고 있어 달리는 것은 일반도로와 마찬가지로 80~100Km로 달린다. 산자락을 굽이굽이 돌고 돌아 숨이 차게
올라가다가 날씨가 변덕을 부리기 시작했다. 고도를 높여 와서 기온이 내려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지를 않나 맑은
하늘 아래 백두산을 보러 가는 나에게는 여간 불길함이 아닐 수 없었지만 그 운전사 말은 자기도 백두산에 많이 왔지만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은 다소 위안이 되어 주었다. 그러던 중 새벽에 연길을 먼저 출발하여
가던 백두산행 버스가 털털거리고 가는 것도 추월해 갔다. 이리이리 가던 중에 홀연히 이 산길을 걸어가던 사람이 손을 들어
세웠다. 차주 양반과 뭐라고 쏼라쏼라하더니 좀 태워 달라는데 어찌하오리까였다. 나야 조수석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았으면 더
이상 아무 이상 없으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래서 뒷좌석에 동승을 시켰다. 그 사람은 한족으로 백두산 자락에서 옛날부터
화전등 농사일을 하는데 요즘은 농사일도 시원찮아 밖에 나가면 차를 타고 다닐 형편도 못된다는 하소연이란다. 농부를 내려 주고
조금을 가니 요번에는 군복을 입은 사람이 손을 들어 또 동승을 했다. 그 군인은 백두산 자락의 통신시설을 관리하는 임무를 맞고
있단다. 그는 이도백하를 좀 못 가서 검문소 같은 곳이 한군데 있고 여기서 통행료를 받는데 여기에 내려주고 우리도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우리말 간판에 메뉴도 우리 음식을 나열해 놓았는데 여기서도 우리말은 한마디도 몰랐다. 음식의 내용을 잘
모르니 운전사더러 시키라고 했더니 조금 있다 나를 주방으로 불렀다. 주방바닥에는 요리에 쓰일 재료들이 늘려 있었는데 이것들
중에서 골라 어떻게 요리를 할건지 말하란다. 조금 어안이 벙벙해졌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을 했었지만 어디를 가던 같은 요리를
만나지를 못한다. 재료는 같더라도 음식을 하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 되는 것이 중국의 음식문화라는 것을 여기 와서 느꼈다.
버섯과 고기류로 점심을 먹고(식대는 2인 50~60위엔 정도) 그 집 창가에 진열되어 있는 담근 술병으로 자연히 눈길이 갔다.
불로초, 도마뱀과 약재를 함께 넣은 것, 또 진귀하기 이를 데 없는 백사가 턱하니 버티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정말 보기 힘든
것을 이 백두산 자락에서 보는구나 하고 켐코드로 촬영을 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았지만 전부 가짜였다. 가는 곳마다 없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기념품 등의 쇼핑은 대단한 자제력이 없으면 돌아올 때쯤이면 가방 안은 온통 쓸데없는 잡동사니로 가득할
것이다.
조금을 더 달려가니 갈래길이 나오고 좌측으로 돌아서니 백두산 아래 첫 마을이라는 이도백하. 길옆에 버스정류소가 있고
거기에서도 몇몇이 땅바닥에다 고풍스런 물건들을 몇 점씩 내다놓고 팔고 있었다. 나는 운전사더러 집안(集安)쪽으로 가는 차편을
알아봐 달라고 했으나 정오쯤에 지나가는 한차례의 버스밖에 없다고 한다. 계속해서 백두산을 향하며 집안으로 가는 것에 대해
운전사와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도저히 나의 일정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았다. 정확하게 일정대로 움직여져야만이 돌아가는
비행기에 오를 수 있고 한마디 말도 통하지 않는 나에게는 무리라고 적극 만류를 했다. 나로써도 별도리가 없었다. 만약에
집안으로 간다면 빨라야 내일 저녁 늦게서야 도착(이도백하에서 집안까지는 10시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될 것이고 또 하루
집안관광, 통화를 거쳐 사평으로 연결되는 차편 사정도 어떠한지 알 길이 없다. 아쉬웠다. 광개토대왕비를 비롯하여 고구려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그곳이기 때문이다. 다음에 관광하는 이들을 위해 한마디 붙인다면 절대로 욕심을 내지 말고 일정은 충분한
여유를 할애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남아 쉬어 가는 한이 있더라도. 여행은 여행이어야 한다.
<백두산 입구에서 발매하는 입장권>
<입장권과 함께 발매되는 각종 부권>
아쉬움이 교차하며 밀림의 도로를 따라 이윽고 백두산(장백산)입구 매표소 앞에 도착했다.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주말이라 그런지 군복차림의 사람들이 많았고 생각보다는 한국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좀처럼 볼 수 없었다. 도착시간은 13시.
5시간 정도가 소요된 셈이다. 버스나 지프로는 조금 더 소요될 것이다. 2명의 입장료, 통행료, 차량입장료등 160여 위엔을
지불하고 천지를 향해 지체없이 출발했다. 여기서 장백폭포 바로 아래 주차장까지가 26Km. 말이 입구지 걸어서 가자면 반나절을
강행해야하는 거리다.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놈의 얼굴이다. 울창한 숲길을 따라 먼 곳에서부터
장백폭포는 그 위용을 드러내 보인다. 좌측으로 몇 개의 호텔이 있고 주차장 바로 인접한 곳에 또 다시 호텔, 대우의 깃발을
내걸고 시공중인 건물도 있었다. 주차장 한켠에 차를 세우고 내려썼다. 날씨는 계속 먹구름만 잔뜩 하다. 바람도 세차고 기온도
거의 10도 정도로 낮은 것 같다. 주차장 한쪽에서 강한 경상도 톤의 아저씨가 불렀다. 새벽에 연길에서 일행과 지프를 타고 와서
오전에 천지에 올랐다가 발끝도 내려다보지 못하고 하산, 방금 장백폭포를 보고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연신
토로했다. 그러면서 차려놓은 음식을 권했으나 나에게 지금 먹는 것은 안중에 있을 리 없다. 엉덩이를 반쯤 폭포 쪽으로 뺀 채
맥주 한 캔을 단숨에 비우고 나중에 보자는 인사를 뒤로하고 먼저 장백폭포로 향했다. 7월의 절기임에도 불구하고 날씨는 냉기가
흘러 운전기사가 긴소매의 옷을 입으라는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여 준비한 등산용 파카를 꺼내 입었다. 그리고 자기는 차에서
기다리겠다길레 혼자 폭포입장권(10위엔)을 싸서 잔걸음으로 올랐다. 폭포수가 흘러내리는 강가의 노천온천에는 온천물에 달걀을
삶아서 팔았다. 강다리를 건너고 철계단을 올라 10여분을 가니 폭포를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다는 위치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념촬영도하고 한편에서는 우리 한복을 빌려주는 곳도 있었다. 몇 사람에게 말을 걸었지만 손을 저었다. 젊은 남자에게 그냥
카메라만 내밀었더니 포즈를 취하란다. 역시 바디 랭귀지가 최고였다. 폭포는 떨어지는 수량이나 규모 면에서 국내의 이름난
폭포들과는 비교의 대상이 아니었다. 몇 장의 사진과 켐코드에 그 위용을 담는 동안도 마음은 계속 천지를 향했다. 하늘은 계속
우는 놈의 얼굴이다. 주차장으로 내려오자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얼마를 별러서 여기를 왔는데...!
<장백폭포 입장권>
<장백폭포의 위용>
운전기사도 내가 좀 안쓰러워 보이는 눈치였다. 그러는 동안 중국 아저씨 한 명이 이곳에 도착할 때부터 따라 붙어 천지에
올라가자고 호객행위를 한다.(이게 웬 말인고 하면 여기 주차장에서 천지로 올라가는 입구에 또 다시 검문소 같은 것이 있는데 이
곳에서 통행 허가증이 없는 차량은 출입을 막아 출입증이 있는 지프나 다른 차로 갈아 타야한단다. 훼손방지를 위한 관리차원인지
봉으로만 생각는지?) 누군들 가고 싶지 않아서 안가나? 하늘이 저런데! 운전기사의 권유로 입구 맞은편에 있는 일명 소천지라고
불리우는 은환호(銀環湖)를 둘러보았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이 호수는 유입되는 물줄기는 있어도 밖으로 물이 빠져나가는 곳이
없다고 한다. 호수는 지름이 40여m의 자그마하고 둥근 모양으로 호수뒤편으로 물이 들어오는 것은 보였으나 배수로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뒤편에 선녀 조각이 보이고 우측에는 산신령처럼 보이는 조각상이 모셔져있었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는 조그만 기념품 판매소도 있었다. 그 곳에 들러 천지를 오르지 못하는 참담함을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해 천지의 사계를
찍은 사진모음을 30위엔을 주고 쌌다. 첫 번째의 기념품 구입이었다.
그런데 하늘이 점점 맑아지고 햇볕이 드리우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호객행위를 하던 아저씨도 안달이 났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함께 동승해 올라갈 사람을 물색했으나 오후 3시가 넘은 시간인지라 동승할(정확히 말하면 비용을 분담할)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겨우 200위엔에 흥정을 보았다. 어차피 혼자서 타야할 형편이라 운전사도 함께 올라갔다. 검문소를 지나
꼬불꼬불 가파른 시멘트포장의 언덕길을 올라갔다.(12Km)
검문소에서 얼마간은 고산목이 즐비하고 올라갈수록 그 키는 낮아지고 아래쪽 방향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비바람이 얼마나
매서운지를 말해주는 것 같다. 어느 한계를 지나서부터는 아예 나무는 보이지 않고 푸른 잔디밭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형형색색의 너무나 아름답게 핀 이름 모를 들꽃들이 새찬 바람에 온몸을 나부끼고 있었다. 정말 장관이라는 말 외엔 달리 표현의
어귀가 떠오르지 않았다. 천지에서의 감흥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면 천지의 장엄. 신비함, 끝없이 이어지는 만주벌판을 내려다보는
웅장함, 그리고 이 들꽃들의 향연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자동차는 기상측후소가 있는 천문봉 바로 코밑의 주차장까지 다다라 세워졌다. 측후소의 위쪽은 풀 한 포기 없는 마사토와 화산석
부스러기로만 이루어져있다. 여기까지 차를 타고 올라오고 보니 편하긴 한데 영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 나라의 최고봉의
등정이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코스라니!
<천문봉에서 바라본 천문관측소앞의 주차장과 망망대해로 펼쳐진 만주벌판>
<천지의 아름다운 모습>
어쨌든 차가 세워지기가 무섭게 봉우리로 뛰어올랐다. 하늘은 정말 믿기 우지 않을 정도로 쾌청하고 천지는 그 장엄한 위용을
한껏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봉우리에서의 바람은 보통이 아니었다. 몸을 가누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맞은편 봉우리에 걸친
구름조각은 딱 멈추어서 꼼짝을 않고 천지의 물결도 미동도 않은 채 평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봉우리 곳곳의 음지녘 희슴프레한
것은 한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눈이 녹지 않고 얼어 붙어있는 것이라고 한다. 봉우리의 좌측 넓은 계곡으로는 북한의 초소가
아련히 보였다. 작년 겨울엔가 허영호씨가 결빙된 천지를 가로질러 답사한 다큐멘터리를 TV에서 본적이 있던 터라 감회가
새로웠다. 눈을 돌려 반대편으로 펼쳐지는 만주벌판의 푸르름은 그 끝을 짐작할 수 없었다. 니 것 내 것을 떠나 저렇게 망망의
초원을 보고 있다는 그 자체로써 신비로울 뿐이었다. 계속해서 트여진 천지를 보려고 사람들이 올라왔다. 4시가 훨씬 지난
시간이라 아쉬움을 달래며, 하마터면 천지를 보지도 못하고 돌아갈 번 한 것에 대한 만족감으로 그렇게 발길을 돌렸다. 폭포 앞
주차장을 떠나 조금 내려오니 좌측에 지하삼림(地下森林)이라는 안내간판이 있었다. 운전사도 자기도 가보지 않았다며 나에게
의향을 물었다. 돌아갈 일정이 문제지 나야 여행을 위해 나선 몸, 하나라도 더 보는 게 좋다고 하여 지하림을 보러 출발했다.
울창한 원시림이 펼쳐졌다. 인적도 없었다. 얼마 안가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열심히 걸었다. 숲속은 거의 평지였고 곳곳에
아름드리 고목이 수령을 다한 채 스러져 자연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한참을 걸어 자그만 고개에 다다르자 아주머니 한사람이
쉬고 있어 운전사가 얼마나 가야느냐고 물어보니 절반정도 왔다고 한단다. 갈등이었다. 그냥 돌아서느냐 아니면 계속 가느냐.
여기까지 걸어 온 것이 아깝다며 계속 갈 의향을 비춰왔다. 그래서 둘은 계속 걸었다. 어디선가 계곡을 따라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에는 그러한 물소리가 날 만 한곳은 없어 보였다. 조금을 가니 2~30Cm의 좁은 틈새가 두어 개 보이고 그 안을
들여다보니 바닥은 보이지 조차 않고 천길 낭떨어지기 아래로 언뜻언뜻 물 흐르는 것이 보였다. 이렇게 좁은가하면 때로는 1~2m의
폭으로 넓어 지기도하고 무성한 이끼와 암벽으로 조화를 이루며 이전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장관을 목격했다. 감동 그 자체였다. 나의 생각으로
이것은 아마 천지가 용 솟고 그 용암이 이 내를 따라 흐르고 억급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서는 천지를 둘러 싼 봉우리마다에
부딪히는 비바람, 눈보라를 모아 흘러내리고 있으리라! 그렇게 한시간여를 걸어 앞이 탁 트인, 내가 선 발 아래로 거대한 삼각주
형상의 원시림 군락이 칼로 자른 듯이 내려앉았고 다시 그 앞쪽으로는 끝없이 펼쳐지는 원시림.
지하림의 신기함보다는 그 곳에 다다르기까지에 펼쳐진 변화무상한 계곡과 워낙 멀고 외진 곳이라 그런지 아직은 사람의 발길이 잦지
않은 것 같은 원시림을 접할 수 있었다는데 크나 큰 감회를 느꼈다. 숲 속에 땅거미가 내릴 무렵에서야 도로로 나올 수 있었다.
차에 오르면서 미리 거리를 알고서는 그 곳엘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둘이서 입을 모았다.
그러나 여기에 관심이 있다든지 시간이 허락한다면 둘러보아도 결코 후회하지는 않을 교육적 효과가 있으리라고 확신을 가지고
추천하는 바이다.
<지하삼림,울창한 밀림이 발아래로 펼쳐져 있다>
<지하림으로 가는 길목의 계곡>
<계곡을 굽이쳐 흐르는 맑은 물---송화강을 이룬다>
이도백하쯤 되돌아 왔을 때는 날은 어둡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조금 더 달려 어느 마을에 도달했을 때는 폭우가 퍼부었다.
예사롭지가 않았다. 저녁도 해결할 겸 한 우리말 간판이 붙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동네는 암흑천지가 되었다. 비바람이 너무 거세
정전이 되었단다. 촛불을 들고 또다시 주방으로 가서 요리 재료와 방법을 선택했다. 개인적 기호식인 개고기는 다 떨어져 못
먹고 쇠고기 수육과 미꾸라지 매운탕(사실은 미꾸라지가 아니고 내가 어릴 적에 냇물에 많았지만 요즘은 볼 수 없는 미꾸라지보다
희고 검은 줄무늬가 있는-내가 어렸을 적에는 질금쟁이라고 불렀음)에 불로초라고 하는 약초로 담근 약주를 오늘의 천운에 감사의
뜻을 곁들여 한잔 쭈우욱...
돌아오는 길은 험난했다. 워낙 거센 폭우가 몰아 치는지 곳곳에 가로수가 통째로 뽑혀 가로누웠고 차들이 퍼져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연길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15분. 비는 멎었지만 연길 시내도 온통 물에 잠겨 있었다. 연길역 앞에 와서 숙소를 잡았다.
역의 맞은편에서 우리의 허름한 여인숙 정도의 시설을 갖춘 곳으로 가서 30위엔을 주고 오늘 하루를 조용히 정리했다.
7/25
아침 햇살은 맑고 밝았다.
배낭을 꾸려 연길역으로 나갔다. 열차표는 어제 운전사의 집사람이 예매(연길⇒길림:30위엔)를 해주었다. 도문을 시발해 연길에서
8:30발, 장춘까지 가는 열차이다. 연길역 광장을 서성이고 역 대합실 몇 군데에서 기념품 판매 진열장을 구경했다. 한국
관광객들이 선호할 물건들로 가득했다. 각종 한약재, 뱀등으로 담근 술, 진위불명의 웅담 등등 여기서는 하나라도 사면 쓴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우리 동포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곳에서 이런 느낌을 가져야하다니 씁쓸한 마음이 앞섰다. 시간이
임박해지자 이웃과도 같은 사람들로 무척이나 붐볐다. 기차가 플랫포움에 도착하자 도문에서 도착한 사람들이 거의 채우고 왔던
차에서 다 내렸다. 그리고 연길에서 어디론지 모르게 떠나는 사람들로 다시 가득 찼다. 앞자리에는 연길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하는
예쁘장한 아가씨가 동행, 길림에서 함께 내리게 되어 7시간 30여분(15:55 길림역 도착)을 서로 여러 가지 유익한 대화로 무료치
않게 보낼 수 있었다.
이번에는 여유 있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일제히 가방 등에서 먹을 것들을 내어 좌석 사이마다에 있는 조그만
탁자 위에 올려놓고 먹기를 시작했다. 장거리 장시간을 여행하는 사람들의 자연스런 모습이다. 앞에 앉은 아가씨도 몇 가지를
올려놓고 나에게 먹기를 권했다. 나는 식수와 콜라 한 병씩이 다다. 아가씨가 내민 것 중 낯익은 것이나 저걸 먹기도 하나 싶어
집어서 물어보니 과연 그것은 꽈리(경상도에서는 뚜깔이라고 불렀음)인데 열매는 붉은 색이 아닌 샛노란 색이었다. 그의 말도
붉은 색은 먹지 않고 노란색만 먹는다고 한다. 나는 노란색 꽈리는 처음 보며 먹어보기는 더더욱 처음이다. 그런데 먹어 보니
방울토마토와 별다름이 없었다.
다들 준비한 음식들도 가지가지이고 쉼 없이 먹어들 대었다. 그리고 먹고 난 나머지나 껍질은 그대로 주저 없이 차창 밖으로
'휭'이었다.(.....) 그래도 차 바닥은 해바라기 씨껍질등 온갖 오물투성이들이고 두어 시간마다 승무원이 청소를 했다. 나는 그
아가씨한테 아가씨는 먹고나서 밖으로 던지는 게 너무 자연스러워 보이고 나는 먹지 않고 그냥 앉았는게 더 자연스럽다고
말해주고 서로 웃었다.
연길로 올 때는 밤이어서 창밖의 풍경은 볼 수 없었는데 반해 수많은 풍경들, 특히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살아가고 있는 지역이라
그런지 퍽이나 정감 어린 모습들이었다.
아직까지 중국에서는 농사짓는 토지는 30년간을 계약으로 국가에서 임대를 하여 사용을 하고 그 기간동안은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부터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영어와 컴퓨터(뗀나우)를 가르치고 있다고 하니 정체성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중국도 얼마지 않아
무서운 위력을 발휘할지도 모를 일이다.
대학의 경우는 등록금 4년치를 미리 내고 대부분이 교내 기숙사 생활을 하니 그 밖의 돈은 별로 들것이 없다고 한다. 우리는 대학앞이 최고의 상권인데. 연길대의
경우 4년치 등록금이 10,000위엔이라고 하니 환율로 따지면 우리의 한 학기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잣대로는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며 웬만한 가정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거액임에는 틀림이 없다. 앞에 앉은 아가씨도 언니가 한국에 연수생으로 와서 벌어
자기를 대학에 보내 줘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여간 똘똘해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디서든 우리민족의 교육열은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7/26
아침에 사평으로 가려고 했으나 문제가 생겨 하루를 길림에서 더 머무르게 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길림시내의 동쪽 송화강 건너편에 있는 용담산으로 산책을 갔다. 멀지 않은 거리라 걸었다. 길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입구에 다다랐을 때 조금 색다른 차량행렬이 지나갔다. 초상집의 운구행렬 이라고 한다. 친구 친척들이 마지막
가는 영혼을 달래기 위해 장례식장까지 모든 차량을 동원해 모두 따라가는 것이 관습이라고 한다.
이 산은 나즈막한 야산으로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입구에 매표소가 있는 것으로 보아 낮에는 입장객으로부터 요금을 받는
모양이다. 입구 안쪽에는 어린이를 위한 몇 가지 놀이시설이 있고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포장이 되어 있다. 곳곳에 남녀노소가
어울려 어떤 이는 칼을 들고 어떤 이는 맨손으로 태극권을 하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우리의 체육공원이나 약수터와 흡사했다.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 가는 길가에는 온갖 약장수, 의원, 잡상인들이 줄지어 늘어섰고 구경하는 사람, 치료받는 사람, 흥정하는
사람들로 뒤엉켰다. 30여분을 더 걸어서야 사찰(용봉사?)이 있는 곳에 다다랐다. 안내판은 있으나 그 내용을 알 수가 없다.
변형된 한자로만 표기되어 있어 어디를 가나 난처하기 이를 데 없다. 안내를 하는 사람은 우리말이 서툴고.
사찰은 제법 오래되어 보이고 특이한 점은 중국 어디를 가나 불상에 붉은 망토를 둘러 입혀 놓았다. 사찰 아래쪽에는 조그만 연못
같은 것이 있는데 안내자의 얘기로는 일제때 여기에 사람들을 생수장을 했다고(?)
아침식사 후 길림에서는 유명한 북산공원엘 갔다. 여기는 오랜 사찰을 중심으로 공원화시켜 놓은 종합놀이동산 같은 곳이었다.
매표소를 지나 철길을 건너면 정자가 있고 연꽃이 만발한 호수가 있다. 호수 위쪽에는 아주 커다란 사찰이 자리잡고 있다. 사찰
입구에서 길림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사찰경내에서도 가는 곳마다 따로이 요금을 받았다. 참배를 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굵고 긴 향을 피우고 절을 하고.
<길림 북산>
<북산에서 내려다본 길림시의 중심가>
경내를 돌아서 반대편으로 돌아 나오게 되어 있었다. 뒤편에는 기념품 판매소와 먹거리를 파는 상점들이 있고 아래에는 곡예단도
있었는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차력 등의 쇼를 관람했다.
저녁에는 무더위도 시킬 겸 송화강변으로 바람을 쐬러 나갔다. 중심도로를 따라 강변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도로의 인도를 점유하고 술등의 먹거리를 파는 곳도 있고 10여명의 사람들이 쇼 윈도우를 둘러섰으면 그곳은
영락없이 CD비젼을 취급하는 점포였다. TV모니터를 길 쪽으로 향하게 내다놓고 영화나 Musicvideo를 보여주고 밖에서는 구경을
하고. 80년도쯤 우리 나라에 칼라TV방송이 시작되어 시내 중심가 쇼 윈도우에서 칼라TV를 신기하게 바라보던 그런 풍경이었다. 잘
정비된 강가에 자리잡고 앉았다. 역시 강바람은 시원스러웠다. 백두산 천지의 눈 녹인 서늘한 바람을 그대로 실어 온 것처럼.
아이스크림, 해바라기씨앗, 과일, 역시 사람 있는 곳에는 장사군도 많았다. 그리고 또 먹고 난 뒤에는 잘도 버렸다. 그래도 이런
환경에서도 파리, 모기는 구경을 할 수 없으니 신기하다.
밤 10시를 넘어서자 그 많았던 사람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간간이 오가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7/27
길림에서 머물며 신세를 졌던 분들께 작별을 하고 길림역에서 09:00출발하는 매하구(梅河口)행 열차에 올랐다. 매하구에서 조금을
더가면 통화(通化)와 집안(集安)엘 갈 수가 있다.
그러나 일정 때문에 집안행은 포기를 했었고 중간에 사평(四平)이란 곳이 있고 그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수년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람이 있어 그 곳엘 가기 위함이다. 미리 전화를 해서 사평역으로 마중을 나와 달라고 했던 터라 기차를 타고
사평역에서만 내리면 그만이다. 기차안은 그리 붐비지는 않았다. 겨우 좌석이 다 차질 정도였다. 좌석번호를 찾아가 앉았다.
청바지, 등산복 조끼, 챙모자 조금은 차림새가 달라 보였는지 얼마지 않아 맞은편의 사내가 뭐라고 말을 걸어왔다.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손에 든 회화책을 내밀었다. 영 예상 밖의 반격을 받은 것처럼 잠시 머뭇하더니 내민 책을 열심히 쳐다보더니
뭐라뭐라 하는데 욕을 하는지 뭐라는 지 정말 갑갑했다. 이번에는 내 옆자리에 앉은 사내까지 끌고 들어서는 뭐라고 그러는데
별로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나는 상황에 알맞은 표현을 찾아보려고 애썼다. 모두 책상다리를 하고 한정된 공간 내에서의
바디랭귀지는 맥을 못 추었다.
그러던 중 옆 좌석의 사내가 영어 비슷한 것을 썩어 말했다. 그래서 그 사람과의 한정된 대화가 시작되었다. 나도 잘은 못하지만
그래도 약1년간 네이티버에게 학원비를 갖다 바친지라 영어는 내가 한 수 위였다. 그는 자기를 '한국은 김 대중, 자기는 왕
대중'이라고 자기 이름을 멋있게 소개했다. 그리고 그는 전문대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친다고 했다. 나의 중국어 실력 못지 않게
그의 영어도 짧아 종이에 한자와 영어를 썩어가며 필담까지 시도하였으나 수많은 난관에 부딪혀야만 했다. 서로가 알고 싶은 것은
많은데 언어 불통의 안타까움을 다시 한번 느꼈다. 11:30분에 기차는 장춘역을 지나고 억지 대화는 계속되었다. 맞은편의 사내도
간간이 끼었으나 통역을 해주지 않았다. 자기할말도 벅차서 그런지 아니면 그 사내에게서 느끼는 나의 좋지 않은 직감이 맞아
그런지. 왕 대중씨도 사평에서 내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평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라고. 그의 표현에 의하면 일제때 일본에
항거(hero라고 표현)하여 독립운동을 한 도시라고 한다.
사평역에는 13:30분에 도착했다. 역에는 반가운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광장 맞은편의 우리말 간판 음식점으로 들어가 냉면을
시켰다. 양은 무척 많고 맛은 그저 그랬다. 그런데 내가 중국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가릴 만 한 것은 없었으나 단 한가지 음식
위에 첨가되는 향료성의 채소라고 하는데 미나리가 아주 어리고 날씬하게 생긴 것이라고 보면 될법한 모양인데 이것만은 도저히
먹어 낼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이것이 음식의 감초라고 안든 것이 없을 정도이다. 음식만 앞에 놓이면 이를 가려내지
않고는 못 베겼다. 그 맛은 뭐라고 표현을 할 수는 없지만 자극적이고 강한 맛임에는 틀림없고, 예를 들어 경상도에서 매운탕이나
추어탕 등에 빠질 수 없는 방아잎, 산초가루 같은 것을 서울이나 타지역 사람들이 입에 넣지를 못하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 잎을 한번이라도 씹으면 다른 맛을 못 느낄 정도였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밖에서 음식을 먹을 때면 우리말 간판을 골라서 들어가곤 했는데 거기서 우리말을 하는 것은 딱 한번, 길림을
떠나오던 날 아침에 영업 준비중에 있는 식당엘 들어갔었는데 그 식당의 8살 먹은 딸아이가 우리말을 아주 잘하였다. 하도 기특해서
호주머니에서 백원 짜리 동전을 꺼내 보여주며 이 할아버지가 우리 한글을 만드신 분이 다며 선물이라고 주었더니 한참 동안
가지고 보더니 나중에는 나에게 돌려주는 게 아닌가 선물이라고 했더니 아버지가 이런걸 받으면 안 된다고 했단다. 나도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많은 걸 느끼게 하고 교육상 더 이상 권할 수도 없어 나올 때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나왔다.
이처럼 간판에 우리말로 씌어 있다고 우리의 정서가 담긴 음식이나 말 한마디를 나누고자하는 기대는 정말 쉽지를 않다. 우리의
경제력이나 동포들을 유인하기 위한 하나의 상술정도라고 생각해두자.
사평의 버스터미널은 새로 지어 이전 중에 있는 듯 더운 날씨에 사람을 오가게 했다. 버스에도 호객꾼이 있어 손님을 한 명이라도
더 태우려고 성화가 보통이 아니었다. 떠나는 버스를 세워놓고 100여 미터를 달려가 타야했다. 사평에서 백천이란 곳은 버스로
2시간 정도를 달려야 한다. 전형적인 농촌들의 연속이었다. 기차를 타고 달리는 것보다 더 가까이서 더 친숙해진 느낌으로
버스여행을 하였다.
백천은 소규모의 도시로 농업이 주가 되고 근처에는 석탄광산도 있고 우리 동포들도 4~50호구씩 무리를 지어 흩어져 살고 있다고
한다. 그 중의 한 동네에 오래 전부터 형님 아우라 부르는 분의 집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 형님은 일찍부터 차 운전을 하여서
생활은 상대적으로 윤택한 편이었다. 200여평의 대지에 2층 양옥집, 뒤에는 넓은 텃밭이 딸려 있어 웬만한 채소는 자급이 되는
정도였다.
7/28
아침 공기는 맑고 상쾌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형님 네가 짓고 있는 농사 구경을 하러 밖으로 나갔다. 철길을 따라 걸었다. 철길
옆에는 저수지가 한 개 있었는데 강태공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앉아 낚시를 드리우고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하루에
20위엔을 주고 하는 유료 낚시터라고 한다. 깨묵같은 밑밥도 던져 넣고 우리가 하는 낚시와 별다른 차이가 없고 요즘은 고기도 잘
낚이지 않는다고 하여 이내 자리를 떠나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농사를 짓는 법에 대하여 여러 가지를 물어 보았는데 논농사는
우리와 별다른 차이점이 없었다. 잘 정리된 논둑 위에는 논두렁 콩을 심어 놓았다. 요즘은 보기가 힘들지만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논두렁 위에 콩을 심지 않고 비워 놓은 곳은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좁은 땅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알뜰한 지혜가
이 넓은 만주벌에 와서조차 몸에 베어 있는 것 같았다.
논이 차지하는 비율은 극히 낮으며 절대다수의 대지는 옥수수 밭으로 뒤덮여 있고 사람의 키보다 훨씬 높게 자란 옥수숫대마다
에는 그 속살들이 여물어 가고있었다.
점심때가 되어서는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겠다고 백천엘 나가자고 하였다. 그 집에서 백천중심가 까지는 약2Km정도 떨어져 있어
걸어서 이동하기는 조금 먼 거리였다. 그래서 도로에 나가니 100cc정도의 오토바이들이 3~4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택시와의
틈새시장에서 개인적으로 영업을 하는 것으로 그냥 오토바이 뒷좌석에 붙어 앉아 가는 것이다. 그렇게 시내에 도착하여 한
음식점에 들어갔다. 여기에는 그 형님의 동네에서 절친하게 지낸다는 다른 한 분도 동석을 하였는데 술을 한잔 들이키며 들은
그분의 운명은 참으로 기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분의 고향은 대구이고 자기를 낳고 얼마지 않아 어머니가 젖먹이인 자기만을
엎고 친정인 북한엘 다니러 갔었는데 그사이에 6.25전쟁이 터지고 그것으로 어머니를 제외한 나머지 식구들과는 생이별을 하고
여지껏 타의에 의해 살아온 한 많은 세월들을 담담하게 들려주었다. 어떻게 하다보니 중국에까지 흘러들게 되었고 중국과의
국교가 정상화되자마자 홍콩을 거쳐 고향을 방문할 수 있었고 그리운 형제들과의 만남도 있었단다.
한낮의 달구어진 땅덩이를 옅은 안개가 내리 깔리면서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도 서서히 깊어만 갔다.
7/29
다섯 시 정도에 눈을 떴다. 이날은 한여름의 아침이 아니었다. 짙은 안개가 내려 갈리고 기온도 초가을 아침의 스산함마저 느껴질
정도로 싸늘하였다. 다음에 다시 중국 여행의 기회가 있으면 우리가족 모두를 데리고 한달 정도의 일정으로 오라는 호의에 찬
가족들의 환송을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만류에도 불구하고 형님이 창춘까지 동행을 해주셨다. 집 앞 도로에서 5인승 오토바이에
올랐다. 오토바이 뒤에 리어커같은 것을 부착하여 두 명씩 마주앉게 되어 있어 운전사를 포함해서 5인승이니 택시와 같은 기능을
하는 셈이다. 이른 아침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길가에는 일터로 향하는 듯한 사람들의 행렬로 붐볐다. 역시 주 이동수단은
자전거였다. 료원에서 6시 50분에 출발하는 25인승 버스에 올랐다. 료원도 그리 크지 않은 도시였는데 버스터미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규모가 크게 신축된 것이었다. 사용율도 극히 저조해 보였다. 아마도 미래를 내다보는 계획경제의 전형으로
생각되어 졌다. 정시에 터미널을 빠져나온 버스는 좀체 가속을 하지 못하고 안내양은 버스에 매달려 호객을 계속했다. 한
명이라도 더 태우기 위함이라고 하는데 이런 현상은 얼마전 사회주의 시절에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손님이야 타던 말던
시간만 되면 차는 운행이 되었다고 한다. 급류를 타고 있는 자본주의로의 일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시원스레 초록으로 뒤덮인
망망의 벌판, 곳곳의 소규모 마을을 지나고 한 두명의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연장 끝단의 고속도로에 오를 때까지 반복되었다.
일반국도와는 달리 고속도로는 여느 것들과 다름없이 아주 정비가 잘되고 깨끗하였다. 장춘의 톨게이트에 도착하자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고속도로를 승차정원을 초과하여 운행하다 적발된 것이다. 운전사가 공안에게 불려가고 한참동안을 실랑이를
벌이다 돌아왔다. 벌금을 내야하는데 대수로와 하지 않아 보였다. 일상적이며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 운이 나빠 적발된
정도로. 아마 중국이 극복해야할 문제가 이러한 일상적으로 만연해 있는 부정적 요인을 얼마나 빨리 제거하느냐가 아닌가 싶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도 그러한 분야에서는 뒤지지 않지만 말이다.
톨게이트를 벗어나자 바로 장춘시의 남쪽 외곽이 시작되었다. 도로변에는 많은 남자들이 늘어서서 조그만 피켓 같은 것을 하나씩
들고 지나가는 차량들에 내보이곤 하고 있었다. 그것은 일자리를 구하거나 멀리서 장춘을 방문하는 외지인들에게 길안내 등을
하겠다는 내용들이라고 한다. 워낙 큰 땅덩이라 남반부 등에서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정확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하옇튼 버스는 남북으로 곧게 뻗은 스탈린대가를 따라 끝없이 계속해서 달렸다. 스탈린대가는
장춘시가지를 남쪽 끝에서부터 북쪽 끝단에 위치한 장춘역까지 중앙을 관통하는 그야말로 주 동맥이었다. 대로의 양옆으로는
고층의 빌딩이 즐비하였다. 성도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개낀 장춘단공원'은 어디메에 위치하고 있는지?
한참을 달린 버스는 마침내 장춘역 바로 앞쪽에 있는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다. 11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근처의 식당에 들러
이른 점심식사를 하고 곧장 공항으로 발길을 옮겼다. 공항에 도착하여 그간의 뒷바라지며 동행을 해주신 형님께 고마움과 함께
작별을 고했다. 현지시간 13:50분발 우리도착시간 17:00. 이렇게 하여 나의 첫 번째 중국여행의 마지막 책장을 덮게 되었다.
도착하자 서울의 날씨는 맑고 후덥지근하였다. 그런데 웬걸 부산행 비행기를 갈아타려고 연결편 표를 바꾸러 창구를 찾았더니
하루종일 부산에는 폭우와 기상악화로 비행기 전편이 결항이라고 한다. 다른 도시는 별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부산만 폭삭
젖었다고 하니 우리의 땅덩이도 그만큼 넓은 것인지 아니면 대자연의 변화무상함 앞에서의 인간의 무기력함인지?
할 수없이 지하철을 갈아타고 강남고속버스터미널로 가서 야간버스를 탔다. 새벽녘에 울산 근처에서 눈을 떠보니 과연 차창 밖은
억수와 같은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