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첫느낌은 강한 레몬향으로 다가온다.
탁구공 만한 작은 레몬(멕시코에서는 '리몬'이라 부름)을 상식하는 멕시코 사람들은 레몬에 대해 거의 신봉적이다.
석회질이 많아 음료로 마시기 힘든 물도 레몬을 짜 넣으면 안심이다. 석회가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그냥 레몬이 살균작용을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상처를 닦을 때에도 레몬으로 닦는다. 모든 음식에 기본적인 양념이 레몬이고 콜레라나 멕시코의 풍토병인 수인성 아메바도 레몬으로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거리 전체에 그리고 사람들의 몸에 레몬냄새가 베어 멕시코 공기에서 레몬향을 강하게 맡게된다.
과일들도 열대과일에서부터 온대 과일까지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풍부하게 넘쳐나지만 계절에 따라 출하된다. 오렌지나 수박, 파인애플, 바나나, 멜론, 사과 같은 과일은 사계절 늘 볼 수 있는 과일이지만 여름에는 망고와 선인장 열매인 뚜나가 성시를 이룬다. 가을쯤에는 포도가 지천이고 겨울에는 밀감이 넘쳐난다. 제철을 지켜 나오는 과일들을 보면 비닐하우스 농사가 유행인 한국에 비해 농사 조건이 훨씬 수월하고 인공작이 필요 없을 만큼 농산물이 풍성함을 알게 해준다.
그러나 깊은 맛에 예민한 한국인의 입맛에는 밀도가 높지 않은 불량 과일 같은 단맛에 쉽게 질리고 만다. 열대과일들 중 특이하게 생긴 여러 과일 맛이 합쳐진 듯한 치리모아나 겉 모양새는 도깨비 방망이처럼 못생겼지만 과육은 훌륭한 맛을 가진 과나바나, 별모양을 하고 있는 모과맛의 까람볼라, 감맛을 내는 사뽀떼, 향이 짙은 과야바, 고단백 영양 식품인 아과까떼, 구린내를 풍기는 빠빠야, 한국의 으름과 비슷한 뚜나 등은 희귀한 맛에 정을 들여 보려 하지만 즐겨 먹을 수 없을 만큼 향과 맛이 진하다.
이들의 주식인 옥수수와 감자는 원래의 고향이 멕시코인지라 한국의 맛과 거의 똑같다.
고대 문명을 일구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옥수수는 시대의 변화를 따르지 못하는 시골 농부들의 게으름을 만성화시키고 있는 신의 선물이다. 거름 줄 필요도 없고, 박토에 그냥 옥수수 알갱이만 떨어뜨려 놓으면 들쥐나 두더지 따위의 자그마한 설치류가 물어 가는 것을 제하고라도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일해도 절반 정도는 수확을 거둘 수 있다. 또 옥수수로 만드는 음식에 그다지 물이 필요치 않아 물이 있는 곳을 굳이 찾아다닐 필요가 없으니 산짐승과 다름없이 자연적으로 살아도 무방한 산족들이 지독한 인간냄새를 풍기며 황무지나 산속 외딴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멕시코 음식의 대표적인 따꼬Taco는 여러 가지 속을 또르띠야Tortilla(옥수수나 밀로 둥글넓적하게 전병처럼 만든 것)에 싸서 갖은 소스를 쳐가며 먹는 대중 음식인데, 고기류와 야채류 콩류로 무엇이든 다 싸먹기 때문에 종류도 수백가지이다. 소스도 기본적으로 두 세가지를 쳐 먹는데, 멕시코 고추인 칠리의 색깔에 따라 빨간 칠리 소스, 초록색 칠리 소스가 각각 나온다. 또한 아과까떼, 실란트로(향채), 파인애플 조각도 곁들여진다. 국물 종류로 소파가 있고, 바르바꼬아(바베큐, 소·양 불고기)나 까르네(고기류), 특히 닭요리와 콩 종류인 프리홀을 많이 먹는다. 소파, 전체요리, 후식 순으로 진행되는 식사 중에 밥에 해당하는 또르띠야는 얼마든지 제공된다. 그리고 후식으로는 단 것들을 먹는데, 케익이나 푸딩, 젤라틴, 샤베트나 아이스크림 등으로 입가심을 한다. 커피 또한 모든 음식점에서 기본적인 음료이며 멕시코 레스토랑에서는 대부분 손님이 커피를 다 마시면 커피를 몇 잔이고 계속 채워주는 곳이 많다.
또한 야생초들이나 향초를 요리에 넣어 맛과 향을 돋구기도 하는데, 특이하게도 호박꽃과 개망초 꽃가지를 요리에 많이 사용한다. 또한 모든 음식에는 리몬이 거의 기본이다시피 한다. 중국에 가면 식탁에 통마늘이 굴러다니듯 멕시코 식당에는 리몬 종지가 있다.
멕시코 사람들은 식사할 때 거의 소리를 내지 않는다. 행여 음식 씹는 소리가 나게되면 멕시칸들은 즉시 mal educado (가정교육을 잘못 받은 자)라며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자니 자연 입을 다물고 오물거려야 하는데, 후루룩 쩝쩝거려야 밥 먹는 것 같은 한국인으로서 익숙해지기까지 괜스레 주위의 눈치를 보게된다. 이 또한 음식문화의 차이로 한국음식이야 뜨거운 국물 종류가 많아 입을 데지 않으려면 저절로 조심스럽게 먹는 소리가 나게 되지만, 멕시코 음식은 뜨거운 것이 없어(커피나 차조차 뜨겁지 않다) 소리내지 않고 먹는 것쯤 그리 어렵지 않다.
멕시코 사람들의 식사 모습을 보면 대부분 대식가들이 많지만 상류층으로 갈수록 과일이나 야채 종류로 소식을 하고 서민들은 엄청나게 먹어댄다.
먹는 음식에 따라서 몸매도 가지가지다. 상류층 사람들은 서구적인 용모와 호리호리하게 키가 큰 반면 서민들인 메스띠조들은 콜롬비아 화가 '페르난도 보떼로' 그림 속의 모델들처럼 기괴하고 풍선처럼 부풀어 있는 인물, 그 자체이다.
메스띠조의 특징인 땅딸한 키에 목이 없고, 거대한 엉덩이에 다리는 가늘어 몸 전체가 균형 잡히지 않은 거대한 드럼통 같은 아줌마 아저씨들이 상당히 많다. 그들 곁을 걸어가자면 넘어지지나 않을까, 숨은 제대로 쉬고 살까, 걱정되다가도 혹시 졸지에 압사 당할 일이라도 생길까봐 조심스럽게 피하게 된다. 이렇게 몸매가 비대해진 데에는 그들이 먹는 식습관에 비해 운동량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멕시코 거리에는 일종의 포장마차 격인 따꼬나 또르따(멕시코식 햄버거)를 파는 간이 음식점이 넘쳐나 출출하다 싶으면 언제든지 기름기가 많은 음식들을 먹어댄다. 거기에 음료수로 꼬까(멕시코에서는 콜라를 꼬까라고 한다)나 탄산음료를 반드시 마시고 있어 살이 찔 수밖에 없다. 그래도 비만을 걱정해 리몬을 많이 먹는데, 리몬이 비만을 방지한다고 무조건 믿고 있다.
멕시칸 코끼리들은 마른 편인 나를 보고 혹시 한국에서 직업이 모델이지 않느냐고 묻지만 한국사람 대부분이 다 나와 비슷하다는 말을 곧이 들으려 하지 않는다.
정말 음식에서 연루되는 건지, 기후와 풍토가 그렇게 만드는 건지, 아니면 스페인인과 혼혈이 되며 이상현상을 일으킨 건지 멕시코 사람들의 얼굴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의아하고 슬퍼진다. 아이 때는 거의 천사 같은 얼굴이다. 인형처럼 반짝반짝 시원스런 눈망울에 깎아놓은 듯한 콧대를 가진 잘생긴 얼굴이 십대 후반에만 들어서면 얼굴이 일그러지고 눈빛은 흐리멍텅해진다. 그러다가 삼십줄 만 들어서면 거의 중년으로 시들어 버리고, 오십대는 노인네와 다름없다. 이렇게 조로하는 이유를 음식과 기후의 탓으로 보고 있는데 곁들여 그들의 사고방식도 한몫 할 것이다. 십대에 벌써 성을 알고 영혼을 빼앗긴 사람들처럼 쾌락을 추구하며 살다보면 눈빛은 십대에 벌써 흐릿해지고 맹한 표정으로 굳어져 가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얼굴 생김새만 보고도 계층을 확연히 구분할 수 있다는 말은 수긍이 간다.
여행편 - 불처럼 뜨겁고 죽음처럼 차가운, 천국과 지옥이 가장 가까운 땅!
만약 멕시코 전역을 여행하고자 한다면 대단한 인내심과 지구력을 필요로 할 것이다. 볼거리가 한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도 아니고,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의 길이가 4,600킬로미터이며, 2백만 평방 킬로의 대지에 얽혀있는 24만 킬로에 달하는 여행 도로를 죽자사자 달려야 하루에 겨우 한 두 가지씩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40도를 오르내리며 구워질 듯한 태양과 습도에 숨막히는 열대 해양성 기후와 사월 오월까지 눈발이 날리는 중앙 산악지대의 바람과 추위 등 기후 환경이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적응해야지 조금만 긴장을 풀었다가는 금방 녹초가 되고 만다.
아열대와 사바나, 스텝과 건조 사막, 그리고 고산지대 등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기후가 다 갖추어져 있는 멕시코 땅은 기후와 풍토에 맞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만 보더라도 인간과 자연을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고대 유물들의 자취를 찾아 종횡무진 하다보면 시간 속을 넘나드는 사차원의 여행까지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멕시코시티 - 레포르마를 따라서...
멕시코의 핑크지대 소나로사Zona Rosa에 우뚝 선 독립기념탑Monumento a la Independencia은 1910년 독립기념일에 세워져 앙헬탑 (천사탑)으로 멕시코의 상징이 되어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금빛으로 번쩍이는 승리의 날개를 단 자유의 여신이 왼손에는 독립의 의미로 끊어진 사슬을, 오른손에는 축복의 월계관을 누군가에게 금방이라도 씌워줄 듯 내밀고 있다.
일설에는 조각가 안또니오 리바스 메르까도 Antonio Rivas Mercado가 자신의 딸을 모델로 삼았다는 후담이 전해지는데, 콜롬버스를 후원하여 라틴아메리카에 식민지 역사를 시작하게 했던 이사벨 여왕이 모델이라는 설도 있다.
천사상 정면에는 멕시코 독립의 아버지인 이달고를 가운데 두고 천사 둘이 월계관을 씌워주고 있고, 사면의 각에는 평화Paz, 정의Justicia, 전쟁Guerra, 법Ley을 상징하는 여신들이 사방을 바라보고 있다.
이 앙헬탑을 가운데 두고 동서로 주욱 뻗은 도로가 레포르마라는 종로격인 중심도로이고, 앙헬탑을 기점으로 서쪽에는 차뿔떼뻭 공원이 동물원 박물관 미술관 등 문화 공간을 안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신문사들이 모여있는 이달고 지역을 반환점으로 알라메다 공원이 있다. 이곳에서 소깔로로 접어들기 전 노란 말머리 형상인 또레 데 까바이또 Torre de Caballito가 사통팔달의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고, 바로 위쪽에 보이는 거대한 돔을 이고 있는 건축물이 독립기념탑 Monumento de la Revolución이다.
1900년대 초 뽀르피리오 디아스 Porfirio Díaz 시절에 건축되기 시작한 이 건물은 처음부터 기념탑으로 건축된 것이 아니라 의원들의 회합장소로 쓰일 예정으로 지어진 정부 건물이었다. 그러던 것이 1910년 혁명이 발발하며 건축이 중단되고 건물 형태를 변경하여 지금과 같은 혁명기념탑으로 모습을 바꾼 것이다.
현재 이곳 지하에는 혁명 당시 희생되었던 빤초 비야 Pancho Villa (1877-1923, 멕시코 혁명의 지도자, 멕시코 북부지역인 치와와 출신으로 1910년의 혁명이 시작되면서 북부의 농민군을 이끌고 여러 주를 석권. 감상적이었던 성격으로 명확한 강령은 없었으나 대지주의 토지를 몰수하여 농민에게 분배하거나 미국의 간섭에 대항하여 계속 농민의 권익을 지켰지만 정부측의 계략에 의해 암살 당함), 프란씨스꼬 마데로 Francisco Madero (1911-13년 대통령 재임), 베누스띠아노 까란사 Venustiano Carranza (1859-1920. 정치가. 1913년 북부 꼬아우일라 주지사로 마데로를 암살한 우에르따를 국외로 추방하고 빤초 비야와 사빠따의 국민군을 압박하며 헌법제정회의를 소집. 17년에 민족주의적 민주적 헌법을 제정. 17년 대통령에 취임했으나 부하의 배신에 의해 암살 당함) 쁠루따르꼬 엘리아스 까예스 Plutarco Elias Calles, 라사로 까르데나스 Lázaro Cárdenas (1934~40년 대통령에 재임)의 시신이 잠들어 있다.
지금도 멕시코 시민들의 시위나 궐기나 있을 때에는 선인들의 혁명 정신을 이어받는다는 뜻으로 이곳에서부터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돔 지붕 밑으로 사각의 끝에는 돌 조각된 거대한 네 인물이 굽어보고 있으며 건물의 전면인 아치 가운데에는 꺼지지 않는 혁명의 불꽃이 아직도 타오르고 있다. 그러나 멕시코의 영웅으로 사랑받고 있는 혁명가들의 시신이 모셔져 있는 지하는 개방되어 있지 않아 아무나 내려가 볼 수 없으며 혁명기념일에나 일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방문의 특권이 주어지고 있다. 민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대중들의 영웅을 정작 평민들은 사후에도 만나볼 수 없는 것이다.
말머리 조각상 옆으로는 멕시코 서민들에게 꿈을 주는 롯데리아(복권)를 국가적으로 운영하는 롯데리아 나시오날 Lotería Nacional 건물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있다. 복권 당첨만이 유일하게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멕시칸들의 한가닥 희망에서 롯데리아는 종류만도 수 백가지가 넘는다. 그러나 롯데리아 나시오날의 건물이 높아지는 만큼 서민들의 꿈이 하늘에 닿는지는 모를 일이다.
멕시코의 역사적인 시간이 머무는 센뜨로
이제 이곳에서부터 멕시코의 배꼽이라 할 수 있는 소깔로를 향해 출발한다. 걸어서 3~40분 정도의 거리 안에 두루두루 모여있는 멕시코 관광물들을 섬세한 시각으로 보아내기 위해 눈 운동을 해야 하는 곳이 이달고 지하철역이 있는 알라메다 공원이다.
이달고 지하철역 앞에는 호세 마르띠 José Martí (꾸바의 작가이자 멕시코 혁명 정신에 기여한 투쟁가)의 동상이 서있고 바로 뒤에 그의 기념관이 꾸며져 있다.
알라메다(포플러나무 숲이란 뜻) 공원이 시작되는 곳에 '알라메다 공원의 일요일 오후의 꿈'이라는 긴 제목의 디에고 리베라 작품이 박물관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디에고 리베라의 무랄 박물관이 있고, 공연과 행사로 늘 활기 넘치는 알라메다 극장 등이 있다. 또한 1910년 뽀리피리오 디아스 대통령이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베니또 후아레스 Benito Juárez 대통령을 가운데 세운 대리석 기념탑이 알라메다 공원의 상징으로 서있으며, 이 독립 100주년 기념탑 건너편에는 1985년 지진으로 무너진 빌딩들이 몇 년 동안 방치되고 있다가 최근에 철거 공사로 먼지를 날리고 있다.
알라메다 공원 끝에 위치하며 아름다운 건물의 미학을 한껏 발휘하고 있는 빨라시오 데 베야스 아르떼스 Palacio de Bellas Artes는 이탈리아 건축가 아다모 보아리 Adamo Boari에 의해 1904년 건축이 시작되어 1934년 멕시코 건축가 페데리꼬 마리스깔 Federico Mariscal 에 의해서 완성된 종합 문화예술 회관이다. 이 궁전은 여러 가지 섬세한 조각들로 뒤덮여 건축의 우미함을 빛내고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중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건물 외관은 이탈리아 대리석으로 꾸며져 우아한 귀부인의 자태이며, 내부는 멕시코의 검붉은 대리석으로 장식된 아스떼까 양식이다.
이·삼층 회랑을 따라 디에고 리베라, 다비드 알폰소 시케이로스, 호세 끌레멘떼 오로스꼬, 루피노 따마요, 마누엘 로드리게스, 호르헤 곤살레스 까마레나 같은 멕시코 거장들의 벽화가 화려한 색채로 가득 차 있으며, 3층 높이의 엘리베이터는 기발하게도 길쭉한 원통형인 뚤라의 전사상을 도입해 거의 실물과 비슷한 형상으로 투명게 만들어졌다.
이곳에서는 크고 작은 콘서트나 전시회 등이 언제나 풍부하게 열리고 있어 문화공간으로 중산층이나 상류층에 한하지만 멕시칸들의 사랑을 흠뻑 받고 있다. 서민들 또한 외양을 감상할 자격은 있으니까...
여기에서 길 건너 맞은편에 있는 베네치아의 르네상스 풍으로 웅장한 건물이 중앙우체국 꼬레오 마요르 Correo Mayor이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전당포를 연상시킬 만큼 창구마다 철창들이 가로막고 있어 위협적이지만 곳곳에 편지를 쓸 수 있는 대리석 탁자들이 수많은 선인들의 팔꿈치에 모서리가 닳아 반들반들 부드러운 선으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이곳의 또 하나의 매력은 골동품 가게에서 맡게 되는 묘한 향기가 있다는 것이다.
이 박물관 같은 중앙우체국 오른편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라틴아메리카 타워가 평범한 상가들 위로 불쑥 솟아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라는 자랑에 고개를 갸웃하지만 알고 보면 그건 사실이다. 지상 44층으로 176.5m 빌딩이지만 이곳 시티가 해발 2,300m 고지대이기 때문에 해발 높이로 하자면 가장 높은 빌딩일 수밖에...
상징적인 건물은 늘 터무니없는 관람비가 매겨진다. 비싼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유명한 곳은 반드시 보고야 말겠다는 사람들의 참여정신을 잘 이용하고 있는 상술에 떨떠름해 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 유명한 것은 보아둘 필요가 있는 것이 또 여행원칙의 기본이니까.
42층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멕시코의 밤풍경은 거대한 황금불빛 바다가 수평선 너머로 곧장 하늘의 별무리들과 이어지고 있어, 망막한 우주 속에 홀로 서 있는 듯한 황홀을 경험하게 된다.
그 다음이 파란 타일의 집인 아술레호스이다. 건물 외장 전체가 파란 꽃무늬의 타일로 장식되어 있는 스페인 무어식 건축물인 라 까사 데 로스 아술레호스 La Casa de los Azulejos는 다른 유럽풍의 화강석이나 대리석 건물군들 속에서 유독 뿌에블라산 청색 타일의 신비한 빛을 발하고 있다. 1596년에 건축되었으니 400년이나 된 고가일진데, 현대적인 색채가 전혀 손상되지 않아 현재 1층은 모 백화점으로 사용되고 있고, 2층은 까페테리아로 꾸며져 있다.
라사로 까르데나스 거리를 따라 조금 내려가면 멕시코의 바께로(카우보이)들이 신는 부츠들을 파는 가게들의 밀집지대가 나오고 그 다음이 가리발디 광장 Plaza Garibaldi, 일명 마리아치들의 광장이다.
주말 저녁이면 수많은 마리아치 Mariachi 악단들이 연인들을 위해 연주를 하며 근처의 공연 바아로 손님들을 유도하고 있다. 바아에서 식사와 함께 술을 마시며 이들의 연주와 전통 멕시코 무용단들의 춤을 감상한다.
마리아치의 기원은 정복이후,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임명으로 막시밀리아노 대공이 잠시 멕시코의 황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그의 재위기간 동안 황실에서 결혼 축하 행진곡으로 Marriage가 자주 연주되던 것이 대중음악으로 퍼져 나간 것이라 한다.
이들의 의상은 스페인의 투우사를 연상시키는 온몸에 쫘악 달라붙고 바지 옆 솔을 따라 금속장식이 줄지어 붙어있는 장식이 요란한 옷이다. 대부분 검은색이나 흰색 회색이고 요즘에는 새롭게 파란색이나 적색 종류의 의상을 입은 마리아치도 종종 눈에 뜨인다. 또한 마리아치의 특징은 유별나게 챙이 크고 화려한 솜브레로(멕시코 모자)를 쓰는 것인데, 외국인들이 기념품으로 매우 좋아하는 것들 중의 하나이다.
이들은 이곳 광장에서만 활약하는 것이 아니라 각 가정의 개인적인 파티나 행사에 불려가 음악을 연주해주기도 한다. 자동차가 지나가면서 잽싸게 이들과 계약하는걸 보면 멕시코 사람들이 집안 잔치에 마리아치 음악을 빼놓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멕시코 역사의 아픔 위에 세워진 까떼드랄 대성당
멕시코 민족의 순수혈통으로 마지막 도시를 이루었던 아스떼까시대 최후의 땅이며, 혼혈 멕시코의 시작으로 탯줄을 잘라낸 배꼽을 상징하는 소깔로 Zócalo.
소깔로란 명칭은 기지 또는 대좌라는 뜻의 까스띠야어인 Socle에서 유래되었으며 현재는 중앙광장을 말한다. 프랑스의 샤를 4세의 동상이 서 있다가 멕시코 혁명당시 철거되었지만 이름은 그대로 남게 된 것이다.
멕시코는 어느 지방도시를 가더라도 크기만 다를 뿐 비슷한 형식으로 반드시 이 소깔로가 있다. 소깔로는 시민들의 쉼터이며 주요관청들이 몰려있고, 행사를 펼치거나 주말이면 축제처럼 장이 서기도 하여 광장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소깔로 지하에는 스페인이 정복하며 철저하게 파괴시켜버린 아스떼까족의 정신과 정치 경제의 중심지였던 떼노치띠뜰란이 묻혀있다. 멕시코 조상의 묘지인 셈이다.
스페인 정복으로 말살된 멕시카족의 도시와 시체 위에 세워진 광장 정 중앙의 까떼드랄 Catedral Metropolitana 대성당. 이것은 비록 아스떼까인들의 정신을 정복하기 위해 세워졌지만 그 위용만을 보자면 멕시코 내의 모든 성당을 관할하는 총본부로 화려함과 웅장함이 저절로 기도하게 만드는 곳이다.
늪지대를 흙으로 메워 건물을 지었기 때문에 현재 조금씩 기울어지고 있는 까떼드랄을 향후 20년 계획으로 보수 공사 중이다. 내부도 철책 공사로 어지러워 경건하기 보다 어수선하다. 그래도 일요일이면 매 시간마다 미사가 있어 98% 카톨릭 교도 국가인 만큼 미사를 드리는 시민과 관광객들로 북새통이다. 성당 안 두 세 군데에서 따로 미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정복국가인 스페인이 이식해 놓은 종교이지만 이들 멕시칸들은 그들 방식의 모태신앙과 카톨릭이 합성된 특유의 종교 분위기를 갖고 있다.
성상들의 발치마다 컵초들이 수백개씩 줄지어 타고 있고, 성상 주변 구석구석에는 몰래 끼워 놓은 신분증 복사 본이나 머리카락 다발, 사진 등이 있어 이들의 샤먼 적인 기원 형태를 엿보게 된다.
멕시코 성당의 또 다른 풍경은 성당 입구에 상주하는 걸인들과 성물이나 음료 과자들을 팔고 있는 상인들이다. 성소 안의 상인들을 내쫓은 예수의 뜻과는 달리 멕시코의 성당 앞은 잡상인들로 늘 시끌벅적 북새통이다. 경건하고 깨끗한 성당이기보다는 사람 속에서 같이 부대끼는 성당인 것이다. 그래서 멕시코 사람들은 일요일의 미사 외에도 근심이 있을 적마다 초들 사들고 수시로 성당을 찾는다.
까떼드랄 왼편에는 1979년 수로공사 중 땅 속에서 8톤 무게의 석판이 발굴되면서 알려지게 된 뗌쁠로 마요르가 있다. 이때 발굴된 석판은 달의 여신인 꼬욜사우끼 Coyolxauhqui인 것으로 밝혀져 이때부터 정식으로 발굴작업이 시작되어 1984년에 일반인에게 공개된 것이다.
스페인의 침략으로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아스떼까 시대 메히꼬 떼노치띠뜰란 MejicoTenochtitlán(메히꼬는 달의 배꼽이란 뜻으로 México 국가 명칭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의 떼오깔리가 현재 소깔로 광장의 까떼드랄의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지금의 뗌쁠로 마요르 자리는 독수리가 뱀을 물고 앉아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 성전을 세운 떼노치띠뜰란 본전의 자리였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아스떼까 사람들의 생각은 이름 그대로 이곳이 우주의 중심지였었다. 1375년에 건축이 시작되었지만 전쟁 포로들에 의해 몇 번에 걸쳐 증축되면서 거대한 성역을 이루었다. 1487년도에 대규모 확장 공사와 함께 신전에서 행해진 인신공양 제의가 4일 동안 계속되었고, 제단에 바쳐질 희생자들의 행렬이 세 줄로 이어졌는데, 그 한 줄이 1마일에 달해 대략 2만 명의 포로들이 제단에 심장을 바치는 가공할 인신공양이 계속되었다 한다.
남쪽으로 아스떼까의 부족신인 우이실로뽀찌뜰리 Huitzilopochtli를 숭배하는 신전이 있는데, 이곳에 인신공양을 하던 제단이 놓여져 있다.
북쪽에는 비의 신인 뜰랄록 Tláloc이 모셔져 있으며, 그 앞에는 차끄몰 Chac Mool이 있다. 스페인 사람들이 도착했을 때 40미터 높이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두 신에게 다다를 수 있는 쌍둥이 신전이 있었다.
이 장소의 또 다른 유물로 15세기 후반의 솜빤뜰리 Tzompantli석판은 240개의 돌 두개골이 열을 지어 부조되어 있는 것이다. 멕시칸들은 이 솜빤뜰리 형상을 좋아해 시내 곳곳에서 똑같은 두개골 부조 벽을 볼 수 있으며, 사자의 날엔 거의 모든 제단들이 이것으로 장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