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몰락한 태양의 제국, 그리고 神의 나라 멕시코의 문화와 풍물을 한국의 언론이나 잡지에 실으며 자유롭게 여행하고 있는 김안나입니다.
저는 왜 하필 멕시코를 선택했을까요? 제가 멕시코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멕시코가 저를 선택한 겁니다.
세상을 인식하기 시작할 즈음(10살)부터 영화를 보기 시작했고, 헐리우드 영화 일색인 한국에서 서부영화를 많이 보게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서부영화 속에 등장하는 갈색 피부에 구질한 몸차림으로 커다란 눈을 겁먹은 듯 굴리고 있던지, 아무데나 총을 빵빵대는 무뢰한 같은 이상한 사람들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들은 커다란 밀짚모자를 쓰고 하얀 옷을 입은 순박한 사람들이나 소도둑놈처럼 보이는 두 종류 사람들이 전부였던 겁니다.
이들이 바로 미국 너머에 있는 멕시코 사람들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항상 상투적으로 미국 배우를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어수룩한 촌사람으로 등장하고, 나중에는 사고를 친 주인공들이 영화를 끝내기 위해 떠나기 곳이 바로 하나같이 멕시코라는 것에 흥미가 당겼습니다.
"가자! 멕시코로..."
멕시코는 미국영화처럼 무법천지인가? 아니면 아웃사이더들의 이상국인가!
이탈리아 영화처럼 -'뿌에르또 에스콘디도'(도망자의 항구) 멕시코의 서남쪽 바다 끝에는 정말 이 항구가 있음- 언제부턴가 범법자들의 이상향으로 지목된 나라 멕시코에 저 또한 일종의 도망자의 열기로 가방 하나를 닻으로 내려놓으며 멕시코를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4년 반이 지나고 이제는 멕시코를 좀 알게되었다 싶은 생각에 감히 언급을 시도합니다.
한 사람을 아는 건 자신의 인생을 두 배로 만들 듯, 한 나라를 아는 건 자신의 정신을 세 배(너와 나, 그리고 우리)로 넓혀 가는 일 일 테니까요...
경제면에서는 아직 불안정하지만 역사와 문화의 다양성에서는 어느 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괴이한 나라 멕시코.
이민자들이 해마다 두배씩 늘고 있으면서도 멕시코를 잘 모르는 사람들과 아님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이곳에 사는 동안 경험하고 느꼈던 멕시코를 한국에 알리고자 합니다.
여행자의 눈이 아닌 이웃으로 바라본 멕시코의 역사, 문화 풍속, 여행지를 쉬지 않고 연재하겠습니다.
기대하시고 멕시코에 대해 궁금한 점 있는 분들은 가차없이 연락 주십시오. 성심껏 답변해드리겠습니다.
살부를 의붓아비로 둔 혼혈민족
수평선과 지평선 너머로 거대한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밤 풍경...
멕시코는 이방인을 위하여 엄청난 불꽃다발을 준비하고 있다.
오늘의 한국을 출발하여 오늘의 멕시코에 도착한 것이다.
몰락한 태양의 제국 멕시코, 300년 동안 스페인의 식민지로 인종이 바뀌어버린, 살부(殺夫)를 의붓아비로 둔 혼혈민족.
수많은 문명과 문화의 발상지로 어떻게 시작됐다가 어떻게 몰락했는지 조차 밝혀지지 않은 수수께끼의 땅!
이 지상에 몇 번의 지구인이 살다 갔는지, 그리고 그들은 어떤 문명을 이루었는지 지구의 역사는 흔적만을 남긴 채, 그 비밀의 열쇠는 사라져버렸다. 아니 인간의 거듭된 퇴행과 함께 풀이 능력을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멕시코 고대인들은 그들이 남긴 유적과 유물에 비추이는 대로 입체적인 시각과 공간 감각과 거시 능력이 있었을까?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다. 그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
거대한 수염고래 형상으로 미주대륙의 잘록한 허리부분인 멕시코.
고대의 기억을 기묘한 풍속에 남겨둔 토템 샤먼, 깊은 산골에 숨어 산 덕분에 정복되지 않은 자연주의자들, 현대의 이기 문명에 욕심 내지 않고 빈부의 차별 정도는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숙명주의자들, 극단적인 부를 가진 사람들, 지독하게 가난하여 짐승보다 못하게 사는 사람들,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삶의 습관이 변하지도 않고 그대로 시간이 정지된 사람들, 그래도 춤과 음악이 있어 예인 기질이 넘쳐나는 사람들...
자신이 타고난 피부색과 환경이 평생을 좌우하는 운명적인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폐쇄적인 사회, 풍부한 자연 덕분에 끊임없이 약탈당하고 정작 자신들은 밀림 속에서 화전으로 연명하는가 하면, 물 한 방울 나지 않는 황무지에서 하늘을 보며 사는 노새 같은 인디헤나들의 고단한 삶...
그러나 자연과 도시 속 어느 곳이든 화려한 색채와 뜨거운 열정이 넘쳐나고, 버림받은 사람들이나 대물린 부귀를 누리는 몇몇 족속들을 포함해서 멕시코 사람들 모두의 가슴속에는 천국이 있고 마찬가지로 지옥이 있다.
멕시코에는 수많은 멕시코가 있다.
멕시코의 다양성을 말하자면 사람 외에도 자연 또한 그 못지 않다. 남쪽에는 희귀한 새들과 동물들을 품고 있는 밀림지역이 있는가 하면, 북쪽에는 풀 한 포기 없는 황무지와 모래사막도 있다. 사람들이 사는 도시를 벗어나면 곧바로 선인장이나 잡목들이 우거진 콘돌의 빈 들판이다. 산꼭대기에 하얀 눈과 얼음을 이고 있는 해발 5000미터 이상인 고산이 사람들과 친근하게 자리잡고 있는가 하면 태평양과 대서양으로 이어지는 멕시코만, 그리고 아름다운 물이 황홀한 색채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카리브 바다까지 골고루 갖추고 있다. 이 외에 천연자원 또한 풍부하여 금과 은, 그 밖의 귀금속과 엄청난 보물들, 석유와 목재, 백사장이 끝없이 펼쳐지는 해안선, 어류로 가득한 바다, 사냥감이 풍부한 산림 등으로 다른 어느 곳보다 천연자원의 축복을 받은 땅이다.
이러한 천혜의 조건을 누리고 살기 때문인지 멕시칸들은 밝고 명랑한 낙천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다. 빈부차가 심하여 상대적인 빈곤감에 불행을 느낄 수도 있을 법한데, 이들은 거의 숙명주의자들의 초연한 눈빛과 마음을 가지고 있다.
197만 평방 킬로미터에 달하는 면적과 1억에 가까운 인구를 가진 멕시코는 물리적 형세로 국토를 나누어보면, 시에라 마드레 옥시덴딸과 시에라 마드레 오리엔딸이라는 양대 산맥이 각기 미국 국경으로부터 시작하여 태평양과 멕시코만을 병행하며 뻗어있다. 그리고 멕시코의 역사적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중앙고원지대는 동에서 서로 640킬로미터, 북에서 남으로 320킬로미터 정도로 펼쳐져 있다. 이곳은 북회귀선이 지나고 고지인 덕분에 사람살기 적당한 기후로 인해, 멕시코 전체 면적의 십분의 일에 불과하지만 인구수의 거의 절반 정도가 살고 있는 곳이다. 멕시코시티가 이곳에 포함되며 현재는 세계 최대의 도시가 되었다.
멕시코는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사계절로 나누기 보다 우기와 건기로 나뉜다. 6월과 11월까지는 우기로 메마른 대지를 충분히 적시고도 남을 만큼 비가 내린다. 해마다 곳곳에서 너무 많은 비가 쏟아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멕시칸들에게 이때만큼 즐거운 계절도 없다. 비가 내려도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걷는다. 오래 전 이들이 비의 신을 중요한 신으로 숭배했던 기억 때문인지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없이 우산을 쓰는 사람이 드물다. 그냥 비를 맞으며 걷던지 비가 그칠 때까지 처마 밑에 서있는 것이다.
멕시코는 7월과 8월이 공기가 가장 깨끗한 시기이다. 하루에 한 번씩 내리는 소나기는 대기의 오염을 씻어내고 신학기를 시작하기 전 여름방학은 2달이 넘기 때문에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자동차 행렬이 사라지니 매연 또한 많이 줄어든다. 그러나 우기 철에는 기온이 많이 내려가 난방시설이 거의 없는 멕시코식 가정에서 살자면 한기가 사람을 괴롭힌다. 두툼한 옷을 입어도 스며드는 한기를 견디자면 비오기 전 햇볕을 충분히 쬐어 피부 밑에 비축해 두어야 한다. 한국인들은 특히 전기 담요 없이는 멕시코에 살 생각을 말라는 경고를 듣게 된다. 그런데 멕시칸들은 이 추위를 어떻게 견디는지 이불도 변변찮고 전기 난로나 전기 담요도 일부 중산층만이 사용하는 듯하고, 서민들은 두툼한 스웨터를 들고 다니는 것이 고작인데, 이들의 피부는 우기의 선뜩한 추위 정도는 건기에 비축된 열기로 견디는 모양이다. 따라서 멕시칸들은 여름이나 겨울이나 특별히 옷차림의 변화보다는 하루에 사계절 의상을 다 보여준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후끈거리는 지하철 안이나 머리꼭지가 구워질 듯 작렬하는 태양 아래에서도 아랑곳없이 가죽부츠에 겨울 잠바를 버젓이 입고 다닌다. 처음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어 털스웨터를 입고 있는 그들을 보지 않으려고 애써 외면한다. 그들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숨막히는 더위에 답답함이 더해져 화가 날 지경이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가슴만 겨우 가리고 다니는 반 벌거숭이 소녀와 나란히 앉아 있는 털스웨터를 입은 아주머니나 가죽잠바를 입고 있는 아저씨를 무심하게 바라 볼 수 있게 됐다. 땀을 줄줄 흘리며, 그렇게 입고도 땀 한방을 흘리지 않는 그들은 그저 망연히 바라본다. 그저 그들처럼 눈동자를 비우고 멍하니...
32개 주로 나뉜 연방체제의 멕시코에서 México, D. F.(Distrito Federal)로 표기하는 멕시코시티를 멕시칸들은 그냥 멕시코라고 부른다. 멕시코 국가를 말하는 건지 멕시코시티를 말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이 멕시코시티에 현재 2천만 명 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어 지구상 최대의 메트로폴리스가 되었다.
멕시코의 공식 언어는 스페니쉬이지만 약 50여 개의 원주민 종족이 사용하는 60여 개의 토속어가 있으며, 남부지역 치아빠스나 메리다 지역에서는 아직도 마야어를 사용하고 마야어로 방송하는 방송국도 있다. 학교에서는 스페인어를 국어로 배우고 있지만 조상들로부터 원주민어인 토속어를 배우고 있는 곳도 여전히 있다. 이들처럼 원주민의 혈통을 지키고 있는 인디헤나(멕시코 원주민, 인디오라는 말은 낮춘 말이고 인디헤나라고 부름)가 15%정도이고, 백인이 10% 정도이며, 나머지는 혼혈인 메스띠조로 대부분 멕시칸들이 이 메스띠조에 해당한다.
그리고 멕시코엔 전국에 걸쳐 여행을 할 수 있는 도로가 약 24만 1천 킬로인데 이것은 라틴아메리카 최대의 여행망이다.
자! 그렇다면 이 같은 멕시코를 어떻게 모조리 설명할 수 있을까, 이처럼 경이롭고 우화 같은 뜨겁게 넘쳐나는 나라를...
멕시코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단지 '격정과 정열과 광란으로 멕시코를 믿을 뿐이다'라고 멕시코의 문호 까를로스 뿌엔떼스의 소설에서 철학자 마누엘 사마코나는 말한다.